어제 저녁, 친구와 저녁을 먹고 난 후 잠시 PC방에 들렀다. 사실 PC방을 그다지 좋아 하지 않는다. 사방에서 내 뿜어 대는 연기는 흡연자인 나 조차도 역겹다. 더군다나 공기가 일정한 방향으로 흐르는 PC방에서는 자리 잘못 앉으면 PC방에 돈주고 담배연기 맡으러 가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랜만에 만난 친구인데, 술은 서로 먹기가 버거운 상태라.. 친구 두놈을 더 불러 PC방에서 두어시간만 놀다 당구나 치고 들어가자고 네고를 하고 들어갔다. 음~ 역시 비흡연자들자리는 텅텅비어 있었고, 흡연석은 꽉차 있었다. 칸막이 유리로 보이는 저 건너편 흡연석 세상을 보니, 내가 마치 한라산 정상에서 서서 발 아래 지나가는 구름을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우리 친구들은 모두 흡연자이지만, 환기가 안되는 듯한 흡연구역에는 들어가기가 꺼려졌기 때문에 그나마 듬성듬성 빈 금연구역에서 조용히 우리들만의 스타크래프트를 즐기고 있었다. 평화로웠다. 저쪽 구석에서는 한 여성손님이 혼자 싸이를 하는 듯했고, 노래도 조용히~ 듣고 있었기 때문에 잔잔한 음악소리가 오히려 고마웠다. 너무 조용하지도 않고, 너무 씨끄럽지도 않고.. 주위사람들에게 '이 정도 소리면 괜찮죠?~' 라며 말하고 있는듯한 적정불륨을 유지하는 그녀의 센스는 PC방의 VVIP로 모시라고 알바에게 귀뜸이라도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평화로운 시간도 잠시... 우리가 들어온지 한시간정도 지났을까? 남정네 4명이 들어오더니,

"저기(흡연석)에 붙은 자리가 없네, 여기 앉지 뭐~ 담배는 나가서 펴~"

라고 하며 뒤쪽 건너편 자리에 일렬로 앉아서 게임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들이 선택한 게임은 PC방에서도 소음의 주범으로 악명 높다는 (카스,아바류)의 총싸움 게임이었다. 갑자기 들려오는 총성소리에 엉덩이 부터 머리끝까지 말초신경이 바짝바짝 자극을 받는다.

"탕탕탕탕탕탕~"

"PC스피커 : 공격하라. 공격하라. 아군이 철수했습니다. 어쩌구 저쩌구!!"
"남자A : 야이 ㅅㄲㅇ, 뒤로 가면 어떻해! 앞으로 가!"
"남자B : 형~ 쏘리요! "

사실 대화의 내용은 온갖 욕설로 도배를 해도 모자를 판이었다. 조사 빼고는 거의 다 욕이었다. 그 손님들이 들어오기 전까지 너무나도 평온했던 분위기는 순식간에 전쟁터로 변해버렸다. 나도 괜히 스피커 볼륨을 올렸지만, 저그 특유의 '꾸에엑~~, 푸더덕~~, 꺄~~~아악' 하는 소리가 역겨워 다시 줄였다. 헤드셋을 껴도 뒷자리에서 나는 송곳같은 총싸움 소리는 막을 수 없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건;; 알바생이 내 뒤쪽으로 다가가더니, 그 손님에게 '사장님'이라고 했다는 것...

"사장님, OO라고 전화왔는데요~?"
"좀 있다가 내가 전화 한다고 그래."

"탕탕탕, 두두두두!! 아~ 또 죽었어. 대체 어디서 쏘는거야!"

그렇다. PC방이 떠나갈듯한 굉음을 내고 있는 손님들은 바로 그 PC방 사장과 일행이었던것. 얼굴은 보지 못했다. 하지만 목소리를 봐서는 40 전후로 보이는 젊은(?) 사장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그런 류의 게임을 할 정도면 50이상은 돼 보이지 않았다. 쩌렁쩌렁 울리는 스피커 만큼이나 그의 목소리도 우렁찼다.

만약 그 사람이 손님이 었다면 조용히 해 달라고 알바에게 부탁이라도 했겠지만, 사장이라니.. 어이가 없었다. 손님이 그러고 있었다면, 알바생이 알아서 제지를 할 법도 한데, 사장이 그러고 있으니.. 알바생도 그려려니~ 하고 있는듯 하다. 

요즘 치고 들어오는게 PC방이고 거기에 맞서지 못하면 떨어져 나가는게 바로 PC방이다. 그럴때는 어디다 하소연 할데도 없다. 신규로 들어온 PC방 때문에 기존 PC방은 문을 닫는 경우를 직접 본 나로서는 두 말하면 잔소리일 정도로 그 PC방의 미래가 뻔히 보였다. PC방의 꿈을 잠시 꾸었었고, PC방의 마지막의 길을 간접 경험한 나는 '성공'이라는 두 단어가 PC방에서는 쉽지 않다는것을 잘 알고 있다.


시간도 시간이지만, 전쟁터가 되어버린 PC방에서 더이상 휴식(?)을 취할 수 없었기에 카운터에서 계산을 하고 알바에게 '씨끄러워서 간다고 사장님께 전해주세요' 라고 하려다 그냥 나왔다. 손님을 위한 PC방이 아닌 사장을 위한 PC방에선 100원이라도 더 지불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게를 나오며 슬쩍 둘러보니 조용히 음악을 듣던 여성분 자리는 벌써 말끔히 치워져 있었다. (진작에 나갔구려;;)

우연이라도 그 PC방에는 가지 않을 것이다. 눈에 거슬리는 손님은 다음에 갔을때 마주치지 않을 확률이 높지만, 눈에 거슬리는 사장은 다음에 가도 마주칠 확률이 더 높기 때문이다. 만약 PC방 사장님들이 이 글을 보게 된다면..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1. PC방은 손님의 놀이터이지, 사장의 놀이터가 아니다.
2, 총싸움류의 게임을 하는 손님에게는 헤드셋을 반강제적으로 권유해 보세요.~ 제발!
3. 친절은 원금회수기간을 하루라도 단축시킨다. (다음 예약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