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눈만 돌리면 PC방을 찾을 수 있는 그런 시대가 왔습니다. 대학가주변이나 유흥가쪽에는 건물마다 PC방이 자리잡을 정도로 그 수는 계속 증가하고 있는 추세입니다.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게임이 오픈베타네, 클로즈베타네~ 정신없이 튀어나오고 있고, PC방업주와 게임회사간의 요금제사이에는 서로 양보할 수 없는 팽팽한 줄다리기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런 PC방 사업에, 대학교 선배가 뛰어들었죠. 그때가 2003년이니..6년 전이네요. 2003년만 하더라도 PC방 창업하려면, 프랜차이즈끼면 억+억+a를 주어야 했습니다. 살면서 만질까 말까 한 엄청난 금액이지요. 이정도의 거금이 아깝지 않았던 이유는 그만큼 시장성을 봤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계속 늘어나는 PC방의 수가 그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며 적극적으로 프랜차이즈를 알아보더니.. 결국에는 계약을 했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부푼 꿈을 앉고, 오픈 후 정신없이 바빴던 그 날


PC방 내부

@ Wiki

그리고 나서 두달 정도 있었나? 가게 오픈했다는 연락을 받고 가보니 눈부실 정도로 멋진 인테리어에 깜짝 놀랐습니다. 물론 PC사양도 그당시 최고사양이었구요. '이 정도면 앉아서 돈을 긁어 모으겠구나~...' 라며 내심 부러워 했었습니다. PC방 사장은 매일 컴퓨터 오락할 수 있고, 알바쓰면 앉아서 돈버는 거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오픈 후 몇달은 진짜 잘 됐습니다. 일부러라도 그 선배네 가게에 찾아가는 날이면 꼭 전화해서 자리 몇개 예약해두어야 할 정도로 손님은 넘쳐났지요. 최고사양의 컴퓨터와 멋진 인테리어, 그리고 선배의 장사수완은 박자가 딱딱~ 맞아 떨어지는것 같았습니다. '역시 돈이 돈을 버는구나' 라며 저도 남모르게 PC방 사장의 꿈을 꾼적도 있었지요. "이 정도만 계속된다면 금방 원금회수 하겠는걸?ㅎㅎ" 라며 자랑할때는 정말 부러웠다는;


경쟁PC방의 등장에 결국 수익은 반에 반토막!


하지만 오픈발이 끝나고 세달째 접어들때 쯤...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대형 프랜차이즈 PC방이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한달후 또 다른 PC방이 들어왔네요. 모르긴 몰라도.. 이 선배의 PC방이 잘되는 걸보고 새로 차린것 같습니다. 결국에는 그 시장을 독점하고 있던 선배의 PC방의 수익은 반토막도 아닌 평소 20% 수준에 머물렀고... 2억넘게 투자한 원금회수 기간은 몇배로 늘어났습니다.

2억을 넘게 투자했는데.. 두 손 놓고 가만히 보고만 있었을까요? 아닙니다. 몇일 방황하던 선배는 이 악물고 다시 PC방 운영에 신경을 썼습니다. 직접 대학가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PC방 쿠폰을 뿌리고, 음료수 서비스는 기본, PC방 청결과 알바생의 태도에 더욱 신경을 썼습니다. 그러자 점점 단골 손님들이 하나둘씩 늘어나고... 몇달후에는 다시 예전 수준의 가동율까지 돌아왔습니다. 불과 1년새 일이지만 선배는 천당과 지옥을 몇번이고 왔다갔다.. 했으니.. 사람 얼굴이 반쪽이 되었더라구요.

하지만.. 근처에 새로생긴 두개의 PC방도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제살 깎아먹기라는.. 가격경쟁에 들어갔습니다. 1000원 하던 PC방 가격이 500원으로 떨어졌고, 방학때는 300원까지 떨어진 적도 있습니다. PC방을 이용하는 고객층은 한정적이기에.. 가격이 반값으로 내려가더라도 손님수는 일정하더라구요. 자리좀 잡나했더니 또 다시 위기가 찾아온 것입니다. 정말 열심히 살아보려고 아둥바둥 하는 선배를 보자니 저도 가만히 있을수가 없어서.. 일주일 내내 유흥가, 대학가에서 쿠폰을 돌린적도 있습니다.


대박은 커녕, 원금회수도 힘든 상황


2억+a를 투자할때에는 '대박의 꿈'을 안고 창업한 PC방인데.. 대박은 커녕 원금회수까지 어려웠나 봅니다. 오픈 3년 만에.. 선배의 목표는 인생대박 -> 원금회수 -> 최소원금회수 -> 최소원금회수 하한선으로 변했습니다. 그 선배가 정한 최소원금회수 하한선이란 컴퓨터 중고+권리금 등을 뺀 가격입니다. 그 만큼 절실했던 것이죠.

결국 원금회수도 못하고는... PC방은 폐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날을 기억하는 이유는 제 컴퓨터가 그 PC방 컴퓨터 이기때문입니다. 어차피 똥값인데.. 너 하나 가져가라 라며 깨끗한 놈으로 하나 주시더라구요. 인간의 마음은 왜 이렇게 간사할까요? 망해서 철수하는 PC방에서 공짜로 컴퓨터를 받고 좋아하던 제 모습이란;; 참;


"무서워서 다른거 하겠니? 지 살자고 죽기살기로 덤비는데 치가떨린다"


PC방 물건 정리를 하고나서 그 날 저녁, PC방 정가운데에서 돗자리 펴두고 동기들, 친구들을 불러다가 새벽까지 술을 마셨습니다. '이 한잔 술로 미련없이 잊자!'며 억지 웃음을 짓던 선배의 얼굴이 아직까지 아련하네요. "선배, 이제 뭐하실 꺼에요? 다른거 뭐 하실건가요?" 라는 물음에.."어디 세상살기 무서워서 뭐 하겠니? 지 살자고 죽고 살기로 덤비는데.. 이젠 겁단다."며 목젖뒤로 소주를 억지로 넣는 냥 머리를 뒤로 체치며 술잔을 기울이는 선배에게서는 예전에 당당한 모습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연락이 끊겼습니다. 저도 취직할시기라 매우 바빴고, 그 선배는 충격이 컸던지 잠수를 타더라구요. 얼마전 그 선배 요즘 뭐하고 사나 궁금해서 싸이를 들어가 봤더니.. 공무원 준비한다고 닫아두었네요. 제가 그 선배를 비꼬거나 비난 하는것은 결코 아닙니다. 단지 이 선배가 얼마나 열심히 사는지 글로 적어두고 싶었습니다.

비록 피튀기는 PC방 사업 경쟁에서 패배자가 되었지만, 그 패배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 얼마나 열심히 노력했는지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저는 가끔 번지르르한 PC방에 갈때면, '여기 PC방 사장도 패배자가 되지 않으려고 기를 쓰고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같은 패배자라도 힘들다고 바로 손을 놓아버리는 것과, 손에서 피가나더라도 안떨어지려고 아둥바둥거리다가 떨어진 것과는 차원이 다르죠. 오픈 1년 만에 주인이 바뀌거나 아예 접어 버리는 PC방도 많습니다. 이런건 다 전자의 내용이겠지요.

요즘 취직이 힘들다, 백수가 아니라 천수~ 등등 나라 안팎으로 힘든 이야기들이 많이 들리는데요. 이 선배 만큼은 다시 자기의 꿈을 이루기 위해 깨알같은 공무원 참고서를 파고 들고 있겠지요? 아니 저는 꼭 그러리라 믿습니다. 혹시나 이글을 보게 된다면.. 아마도 자기 이야기 인줄 알겁니다. 뉴스를 보니 다음달에 공무원 시험이 있다고 합니다. 좋은 결과 있길 바라며, 글로나마 그 선배를 응원해 봅니다. "선배님 꼭 공무원 시험 합격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