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께 어머니와 함께 치과에 다녀왔습니다. 어머니는 임플란트 치료 준비중이라 치과에 다니시는 중이시고, 저는 이빨이 부러졌거든요. 부모님댁에 들러서 어머니 모시고 치과로 이동중이었습니다. 신호대기 중이었는데 바로 앞 건물에서 할머니들이 골목에서 우르르 나오시네요. 결혼식이 있었나? 이 근처에 웨딩홀은 없는데? .. 무슨 잔치를 했나보다라며 주위를 살펴보고 있는데.. 할머니들이 죄다 가방 하나씩 쥐고 계시는 모습을 보고.. '아~ 여기가 바로 행사장인가보다.' 라는 생각이 퍼뜩 들더라구요.
치과치료만 아니면, 행사장 안쪽의 동태를 살폈겠지만.. 예약을 한지라 시간을 지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시더니 옆에 탄 어머니께서 "저 할머니들 행사장 다녀오셨나보구나, 뭘 받았을까?" 라며 신기한듯이 쳐다보시네요.
"왜~ 엄마도 작년인가? 저런데 가서 김한박스랑 화장시 얻어왔자나"
" .. 그지..ㅎㅎ,
처음에 그런거 공짜로 주면서 꼬시는 거지"
"그런데 나중에 그 물건들을 왜 사? 그 돈이면 인터넷으로 더 좋은거 10개는 사겠는데?"
" 미안하니까~ 첫날에 김한박스 받고, 둘째날에 휴지받고, 셋쨋날에는 안마 서비스받고.. 이러다 보니 마지막날에 물건 팔때는 미안해서 살 수 밖에 없는거지.. 그런거 다 공짜로 받았으니까~"
"에이..그래도 그런거에 속으면 안되지. 뉴스도 안보시나?"
" 다니다 보면 안면을 터가지고.. 할머니 들이 안사고는 못베겨. 정에 약해서.. 저 사람들이 어머니~ 아버지~ 하고 붙어서는 얼마나 싹싹하게 구는데~"
"..."
" 나는 마지막날에는 안갔지.. 미안해서 못가겠더라구. 가면 사야하잖아. 며칠뿐이지만 친자식보다 더 싹싹하게 잘해줬는데...(찌릿~째려보심)"
"네~ 어머니 최고!~;;; "
신호대기 받는 동안 이런 짧막한 대화를 나눴습니다. 그리고 사진도 몇방 찍고요.
건물을 빠져나오는 할머니들의 손에는 하나같이 가방이 들려 있다.
사진을 보시면 나이 지긋하신 분들이 모두 같은 가방 하나씩 들고 계시는게 보이시나요? 저분들 모두 저 건물에서 나오셨습니다. 벌써 길에는 저 가방을 손에 들고 다니시는 분들이 수십명은 되어 보이더라구요.
안면 익히고, 정 붙이기
저는 행사장의 사람들이 말빨로 물건을 파는 줄 알았는데..아니더라구요. 그 속에는 고도의 심리전이 숨어 있었습니다. 자식들 타지에 보내고 외로운 노인들을 노리고 자식노릇 하는냥 안마도 해드리고, 말상대도 되어 드리면서 정을 붙이는 것이죠. 그런 젊은 사람들이 노인곁 붙어서 재미있는 얘기도 해주고, 어깨도 주물러 드리면서 이런정보, 저런정보도 알려드리면서 우선 안면을 트는겁니다.
값싸고 부피 큰 물건 공짜로 풀기
3~4일은 값싼 물건들을 공짜로 풉니다. 값이 싸지만 부피는 엄청 큰것들이죠. 시각적 효과를 노린것이겠지요. 김 한박스, 티슈 3~4개 묶음짜리 한통, 솜이불 큰거 .. 등등.. 다른 곳에는 식사를 대접하기도 하고, 무료로 공연을 해주기도 한다는 군요. 또 공짜에 약한게 인간의 마음 아니겠습니까? '첫날 OO 주니까 이거 받고 말아야지' 하고 있는데.. 주윗분들이
'오전에 순이네 엄마가 갔다왔는데 다른거 줬대~ 아침에 갔던 사람들은 XX받아 왔대! 마지막으로 하루만 더 갑시다~'라며 꼬시기도 한답니다. 그래서 다음날도 가서 다른거 공짜로 받아 오고요.
물건 내미면서 말로 현혹하기
그렇게 하루하루 다니다가 갑작스럽게 물건을 내미는 거죠. '아뿔싸! 오늘은 물건팔아 달라고 하는 날이구나'라고 후회를 해도 늦었습니다. 행사장 입구에는 진행요원들이 버티고 있어서 빠져나오지도 못하고 슬슬 눈치보고 피하다가 결국에는 1:1로 눈 마주보며 애처로운 눈빛을 한 양의 탈을 쓴 여우의 꾀임에 넘어가는 것입니다. 노인분들이 알면서도 당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런 걸로 노인분들옆에서 정을 붙이고, 정신을 쏙~ 빼놓으면 누가 안넘어 가겠습니까? 혹해서 구입했지만.. 집에와서 생각해보고 아니다 싶어 반품하러 가면 그때는 자식같던 얼굴을 감추고 본색을 드러내기 일쑤라고 합니다. 예전에 어머니와 같이 행사장에 가셨던 분 중에는 이름 모를 옥매트를 120만원 주고 구입하셔던 분도 있습니다. 그 분만 구입하셨을까요? 그날 그 옥매트는 다 팔리고 없더라는 얘기가..
"어머니~ 허리많이 안좋으시죠? 주물러 들릴께요.. . . . . .. 요즘 새로나온 옥매트에서 자면 허리 싹~ 낫는데.. 한번 누워 보실래요? 어때요 개운하죠? 이 매트로 말할것 같으면 어쩌고 저쩌고~" 라며 운을 띄운 상술에 홀랑 넘어가신 케이스죠. 이걸 피그말리온 효과라고 하나요? 그말 듣고 매트에 누우면 괜히 개운한것 같고, 몸이 가벼워진 느낌이 들어 '하나 있으면 좋겠다' 싶어서, 카드 할부로 끊고 집에 와보니.... 쥐잡는 냥 고양이 발톱을 하고 달려드는 가족들의 원성을 들을 수 밖에 없었죠.
한강의 물을 퍼다가도 돈주고 팔 수 있는것이 그들의 상술입니다. 노인분들 어깨 주물로 주면서 노인분들의 경제상황도 가늠해 보기도 한다고 하니, 말로는 어머니 아버지 하면서도 머리꼭대기에서 놀고 있는 겪이 아닐 수 없네요. 공짜로 주니 하나 얻어보겠다고 들락날락 거렸다가는 되로 받고 말로 주는 겪이 될수 있습니다. 그런 곳에는 아예 처음부터 발을 들여 놓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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