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필자라면 기억하기 싫은 단어중 하나가 검열이 아닐까 한다. 전투지휘검열, 보안검열, OO검열, 보급검열 (이름도 기억안남;) 수도 없다. 검열이 한번 뜨면 부대는 한번씩 뒤집어 진다. 내가 받은 검열 중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은 보급품 검열(?)이다. (이름이 맞나;?) 자대 배치 받고 얼마 안되어서 받은 검열이니 검열 준비 기간동안 정신을 속 빼고 지냈던것 같다.

부대내의 모든 보급품을 꺼내서 상태를 확인하고, 갯수까지 확인하고 모자르면 옆부대 가서 빌려오고 빌려가는.. 그런 훈훈한(?) 정이 있는 작업을 하였었다. 검열 날짜가 잡히면, 그날 부터 일주일 단위로 보급물자를 일일이 꺼내서 점검을 해야 한다. ('일일이'... 이 단어는 지금들어도 치가 떨린다. 정말 하나하나 꺼낸다;;) 하필 창고를 모두 뒤집어 까는 바람에.. 새벽까지 잠못자고 정비작업을 하기도 했다.

누군가에게 검사를 받아야 한다는거.. 쉬운일은 아니다. 높으신 분들은 대부분 눈감이 주지만, 뭐 하나 꼬투리 잡기 시작하면, 그날은 그 꼬투리를 메꾸기 위해 얼마나 뺑이를 치는지 모른다.

"음.. 창고 색이 바랬구먼~" , "도로 굴러다니는 낙엽이 인상적이구먼~ 허허허~"

이 말 한마디에 부대내 모든 건물에 페인트 칠을 했다면 믿을까? 심지어는 부대내의 아스팔트를 물청소한 적도 있다. ㅎㄷㄷ '에이~ 그런게 어딨어?' 군대는 상상 속의 일이 펼쳐지는 마법의 세계 같은 곳이다.

어제 김태희 글에 달린 따뜻한 관심(?)의 댓글때문에 아파하는 블로그에 붙일 반창고를 하나 만들고 있던 중... 어머니께 전화가 왔다.

"아드라~ 어디니~? 저번에 거기 매실 담아둔거 있지?"
"네.. 있어요"
"그거 떠야 하는데.. 그만  깜빠했지 뭐니~! 망가지지 않았나 몰라~! 오늘 떠야 하는데.."
"오늘이요?... 내일하면 안돼요?"
"안돼~ 내일 이모들이랑 어디 가잖어~"
"...."
"지금 간다~ 집에 있어~ 알았지? (뚝~)"
"저...저기.. 자..(잠깐만요..를 말할 새도 없이..전화는 끊어 졌다.)

어떻게는 오늘은 안된다고 말하려고 했지만, 그럴 새도 없었다. 그렇다. 저번에 담은 매실을 뜨기 위해서 어머니께서 내 자취방에 오신단다.  매실을 내 방에서 담근 이유는 다음글에 적기로 하고~..

그나저나 큰일이다. 지금 방상태는 완전 쇼킹뽕짝 짜부러 질정도로 정리가 안되어 있는 상태. (사진은 이미지 관리상.패스. ㅋ.ㅋ) 내일이 예정된 청소날이었는데~ (진짜루.ㅠㅡ) 오늘 오신다니.. 정말 -_- !;; 그 순간, 군대에서 검열을 받는 악몽이 문득 스쳐지나 간다.

참고로 어머니는 깔끔대왕이시다. 하루종일 젖은 걸레를 손에 들고 다니시며, 가구며 바닥이며 닦고 다니시는 성격이라.. 내 방을 보면 어떤 반응이 나올지 대충 짐작은 갔다.

'너가 혼자 자취할때부터 알아봤다'는 둥, '다른 집애들도 이렇게 널어놓고 살진 않는다'는 둥..

갖은 잔소리를 들을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뒷골이 오싹, 말초신경이 곤두서는 느낌이랄까?;;ㄷㄷ

블로그에선 자취의 달인 이라는 칭호(정말?);; 를 받고 있지만, 실제론 그렇지 만도 않다. 남자들 사는게 다 그렇지 뭐~;;

 우선 눈에 보이는 곳만이라도 미리미리 치워둬야 잔소리를 덜 듣는다. 쑥 둘러보니..

상황 종료후 찍은 이미지컷


1. 현관문 쪽에 쌓아둔 맥주 캔 처리
2. 싱크대에서 젠가 중인 그릇 설겆이 하기
3. 방 한가운데 차지하고 있는 옷걸이겸 건조대 정리하기
4. 침대인척 하고 있는 이불 개기

대충 이 정도가 눈에 띄길래 정말 재빠르게 정리를 했다. 방에만 들어오면 슬로우 모션으로 행동하는 내게, 정말 초인적인 힘(?)이 솟아 났다. 일이 대충 끝날 무렵...전화가 한통 왔다.

"아드라~ 1층에 내려와 봐봐. 반찬이랑 쌀좀 가지고 왔는데.. 이거 들고 올라가라."

"밥 해벅지도 않는데.. 왜;;" 라는 말을 해버리면 다음부턴 국물도 없다. 이럴땐 주는대로 받아 와야 한다. 아직 버리지 못한 맥주캔은 옥상 뒷편에 짱박아 두고 쏜살같이 내려가서, 짐을 들고 올라왔다. 방문 앞에 서자.. 점점 긴장이 고조된다. 두근. 두근..두근

".. 철컥~!"


러브하우스 처럼 광각렌즈에 살짝 뽀샵효과주고, 나즈막한 목소리의 나레이션을 상상하면 될것이다. 정말 순식간에 내 방이 이렇게 깔끔해 질 줄은 나조차도 꿈에도 몰랐으니.... 최소한 눈에 보이는 곳은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깔끔했다.

"청소했니? 깨끗하네~ ♡"

일단 4개의 미션을 완료한 결과는 합격이었다. 그런데 정작 사건은 다른데서 터졌으니.....


- 어머니의 자취방 검열 2부 : 옷장을 까 뒤집다. -

정작 사건은 다른데서 터졌다. 여름이 훌쩍 지나서 가을이 중반으로 접어들었으니, 옷장정리를 해야 하지 않겠냐며, 옷장 서랍을 열어보시는 어머니..  옷장 서랍을 열어보자 마자 따발총 처럼 잔소리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이게 뭐니? 옷 이렇게 넣으면 다 구겨져!~(언어 순화)"
"아니.. 그게 아니고.."

3. 방 한가운데 차지하고 있는 옷걸이겸 건조대 정리하기

▲ 3번 미션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빨래를 모두 옷장안에 쑤셔 박았던게 탈이었다. 워낙 시간이 촉박했던 지라...;; 서랍안에 구겨채 들어간 옷들을 모두 바닥에 쏟아 놓고, 하나하나씩 다시 개고 있었다.


"번쩍!"

슬쩍 카메라로 찍어 둔다는게.. 그만 플래쉬까지 터뜨리고 말았네~? -_-;;

"지금 카메라가 손에 들어오니? 빨리 옷이나 개~!"

욕먹으면서도 그 순간순간에도 블로그에 올릴 스토리 구상은 잊지 않기 위해서 몰래 카메라로 찍어두다가 또 걸려 버렸다; 어흠!

옷장에서 여름옷을 죄다 꺼내고 나니 옷이 이렇게나 많다. 한번도 입지 않은 옷들도 부지기수;; 음.. 옷이 이렇게나 많았단 말인가;; 이제는 좀 버릴건 버려야 겠다.;


"내 꽃무늬 반팔티가 여기 있었구나~ 에고.. 또 내년에나 입어야 겠네"

사실 이번 옷장정리는 여름옷을 넣고, 겨울옷으로 바꾸는 것도 있지만, 이사오고 나서 미루고 미루던 옷정리를 하는 날이기도 하다. 이사하고 나서 옷 구분을 제대로 안했더니.. 어제까지 4가족의 짐이 섞여 있었다.


옷장정리를 해보니.. 이 일도 만만치 않다. 내 옷만 있으면 모르겠지만.. 이건 4가족의 옷을 한꺼번에 분류해서 정리해야 하니.. 여간 벅찬게 아니다.

부모님과 함께 살때는 옷정리는 어머니 몫이었다. 여름이 오면 서랍장에는 반팔티가 가득했고, 겨울이 오면 서랍장에는 긴팔티가 가득했다. 내 평생 살아 오면서 그건 그저 자연스러운 일이 되어 버렸고, 계절이 오면 자연스럽게 바뀌는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자취 9개월 만에 계절이 오고 가면 할일이 있다는것을 또하나 배웠다. 이러다가 나중에는,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다 하는게 아닌지 모르겠네...

한시간 남짓, 옷 분류가 끝나고, 일일연속극을 보고 가시겠다는 어머니.....

"매실 떠야 한다면서요... -_-;;"
"아, 맞다!.. 매실! 내 정신좀 봐."
"......;;"
"일단 연속극좀 보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 매실 뜨는 작업은 일일연속극이 끝난 다음에야 할 수 있었다.

- 끝 (1,2부로 나눠서 2부를 좀 디테일하게 표현하려고 했는데.. 졸려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