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취생의 음식은 대부분 배달음식이다. 해먹어야지~해먹어야지~ 하고 자취를 시작했건만, 결국엔 사먹고 시켜먹는게 자취음식의 전부가 되어 버렸다.

자취 10개월 차.. 근처 중국집의 특징을 모조리 꾀어 버렸다. 어디는 짬뽕이 맛있고, 어디는 자장면이 맛나고, 거기서는 세트메뉴를 절대 시키면 안된다는 둥...이건 수많은 시행착오와 돈을 투자하여 얻은 나만의 지식이다.

이번 주말에도 패밀리가떴다, 남자의 자격, 1박2일을 번갈아가면서 보다가 배가 출출하서 결국 친구들과 함께 중국음식을 시켜먹기로 하고 메뉴를 정했다. 점심을 결혼식에서 거~하게 먹은 터라.. 저녁은 간단히 요기만 하자면서 시킨 메뉴는 참... 거하다.

"점심때 부페 먹었잖어~ -_-!"
"입맛에 안 맞어서 별로 못먹었어~"
"앙? 그래서 두접시?"
"ㅇㅇ"

서로 먹을 음식을 하나씩 주문하니, 자장면 한개, 짬뽕 한개, 볶음밥 두개가 나왔다. 세트가 싸겠다 싶었지만, 세트메뉴는 다양한 종류에 비해 왠지 가격에 비해 양은 적었기 때문에 일단 보류..

1박2일에 정신없이 빠지다 보니.. 시계는 어느새 8시를 향했다.

"우리 아까 언제 시켰지?"
"1박2일 시작할때 시켯잖아~"
"그럼.. 한시간도 넘었는데;; 아직도 안와? 전화해봐라~"
"오겠지~ 기다려봐~"

중국집에 배달이 늦는다고 전화하면 "출발했습니다."라는 핑계를 듣기도 하고, 실제로 통화종료버튼을 누름과 동시에 배달원이 도착한 경우도 있기 때문에.. 독촉전화는 하지 않기로 하고 기다렸다.

아니나 다를까~ 잠시후 저 밑에서 부터 계단올라오는 소리가 쿵쿵쿵 들리기 시작한다.


"야~야~ 돈꺼내.. 자장면 오는것 같다."

돈을 주섬주섬 받아서 음식받을 준비를 하고 문을 미리 열어두었다. 문을 닫아두면 너무 캄캄해서 안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잘 안보이기 때문이다. 드디어 중국집 배달원이 도착했는데... 그의 입에서 나온 한마디는...

"저기...OOO(중국집 이름)에다가 음식 시키셨죠?"
"네.."
"뭐 주문하셨죠?"
"...네?"

뭘 주문했냐고?;; 그 말을 들은 우리는 사알~짝 당황했다. 배달맨은 음식대신 주문을 받으러 온것이다. 아까 우리가 전화할때 정신없이 배달이 들어와서.. 우리 자취방 주소만 적어두고 주문받은 음식을 적지 않았다고 한다.

허기져서 오늘내일(?) 할것 같던 A군은 어느새 현관쪽으로 나와 개작렬드롭킥을 날릴듯한 기세다. 그 순간 내 머리속은 시간계산의 싸움이었다.

'이성적으로 판단해야해. 가만보자... 한시간전에 주문을 했는데.. 이제서야 음식을 만든다면, 적어도 20~30분 이상 걸릴 듯.. 지금 이넘들 상태를 보아하니.. 이대로 쓰러진다면 여기서 자고 갈 기세야! 뭐든 빨리 먹여서 보내야해!'

배달원은 연신 죄송하다며 고개를 조아렸고.. 거기다가 화를 낼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냥 어이가 없을 뿐..... 일단 배달원을 돌려보낸 후 상의를 했다.

친구들과 상의 하다보니 어이없는 상황은 분노?로 바뀌기 시작했고, 그동안 모아둔 쿠폰들로 탕수육하나 더 시켜 먹고 이 중국집이랑은 인연을 끊자는 생각에 다시 주문을 했다.


"저기 아까 주문했던 옥탑방인데요.~ 저희 짜장1, 짬뽕1, 탕수육 두개랑, 쿠폰 한판 다 모은거 있는데, 그걸루 탕수육 大자 하나 시킬께요.~"
"앗!~ 네.. 알겠습니다. 일단 제일 먼저 해드릴께요. 너무 죄송합니다. 아까 주문이 밀려서 어쩌고 저쩌고~"
"빨리 쫌~! 갖다 주세요~"

시계를 보니 8시 반...;; 첫 주문 후 벌써 두시간이 지난 상황이라 너무도 배가 고팠다. 아니 배고픔도 잊혀졌다고 할까?;;

20분도 안되어서 중국집 배달원이 왔다. 말 그대로 번개같은 속도였다. 그런데 아까 그 배달원이 아니다. 배달원이라면 머리에는 헬멧, 허리에는 돈주머니?가 필수인데.. 그냥 평범한 아저씨처럼 보였다.

네~♡? 섭스?♡

"아이고~ 죄송합니다. 너무 오래 기다리셨죠?"
"(퉁명스럽게).. 네. 여기 돈이랑 쿠폰판이요."
"탕수육은 서비스로 드릴께요. 그래도 단골이신데.."
"(화알짝 웃으며) 네에~♡ ?"

난 쉬운(?) 자취생으로 보이기 싫어서 계속 퉁명스러운 말투로 일관하려고 했으나.. 탕수육이 서비스라는 말에 갑자기 얼굴에서 피어나는 웃음꽃은 참을 수가 없었다. 그 아저씨는 연신 죄송하다면서 아들뻘 되는 나한테 연신 "죄송합니다." 라고 말하였다. 숨 돌릴 새도 없이 바로 옥탑방을 떠나시는 아저씨.. 아마도 그 중국집 주인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탕수육 大자가 공짜라니;; 두시간 기다린셈 치고는 너무 후한 서비스가 아닐까? 가격을 보니 22,000원이다. '뭐 주문하셨냐'는 배달원의 황당한 질문과, 배를 지체되는 배달시간에 화가 났지만, 주인아저씨의 통큰 서비스에 사르르 녹는 이 기분... 난 어쩔 수 없는 자취생이란 말인가~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