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도 몇개씩 현관앞에는 광고지가 붙습니다. 이사온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20장 넘게 모은것 같네요. 어느 대문에는 '전단지 붙이면 그집꺼는 절대 안시켜 먹는다' 라고 엄포를 놓은 집도 있습니다. 심지어는 같은 광고지가 이틀 간격으로 나란히~ 붙어 있던 적도 있습니다.

현관옆에 쌓여있는 전단지들

종이라 재활용은 되겠지만.. 버려지는 것이 더 많은 광고 전단지들. 자취생들은 방 한구석에 종류별로 모아두었을 법한 광경이 머릿속에 떠오르곤 하는데요. 원룸 주인들이 신경을 잠시 안쓰면 각 방문의 현관은 광고 전단지로 도배가 되어 버리기 십상입니다.

바람에 날려 바닥에 뒹구는 전단지들은 보기에도 않좋아 보이는데요. 그냥 놔두자니 지저분해 보이고, 행여나 자취생들이 가끔 뭐 시켜 먹을때 필요하긴 할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이사오기 전 아파트에 살 때부터 현관에 둔 재활용 박스에는 전단지가 반을 차지했으니 떼는데.. 전단지 떼는 데에는  이력이 났을 법도 합니다.

어제는 저녁약속이 있어서 방을 나서는데.. 주인 아주머니께서 어디 가셨는지 몰라도 각 방마다 전단지들이 서너개씩은 붙어 있네요. '김장김치도 얻어 먹었겠다. 좋은일 해볼까?' 해서 각호실 현관에 붙은 광고지들을 모두 떼어서 1층으로 내려왔습니다. 그런데 현관앞에 나이는 40대 전후로 보이는 아저씨가 검은색 크로스백을 둘러 메시고 두리번 거리는고 계셨습니다. 순간 눈치를 챘죠.

'저 사람이구먼! 전단지 붙이고 다니는사람이...'
저는 범인을 잡은 경찰마냥 아저씨 뒤통수를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옆을 지나쳤습니다. 그리고 손에 들린 전단지 뭉치를 현관앞에 있는 쓰레기통에 넣어버렸죠. 발걸음을 20발짝 옮겼을까? 방에 핸드폰을 두고나온것입니다. ;; 그래서 다시 방으로 올라갔다가 내려오는데.. 현관앞에서 그 아저씨께서 저를 보면서 이 원룸 주인이냐고 물으시네요.

"이 집 주인이신가요?"
"... 아니요~"
"아까보니 전단지 다 떼어 버리신것 같은데..."
"..네?..아 그거요 ..."
"힘들게 붙인걸..."
"........."

얼굴이 붉어지신 아저씨가 따지는 듯한 말투로 갑작스럽게 말을 꺼내서 당황스럽게도 했지만, '힘들게 붙인걸..(왜 죄다 떼어버리냐)'  이란 말을 듣는 순간 할말이 없더라구요. 범인인양 제가 지목했던 아저씨 얼굴에는 생활고에 힘든 표정이었지만 불황을 이겨 보겠다는 의지가 스치는 듯 했습니다. 현관에 붙어 있는 전단지를 보면 열이면 한장 가지고 들어갈까? 나머지는 죄다 버리는데.. 이분은 그 한장을 위해서 계단을 수십번 오르고 내리면서 전단지를 붙이는 것이라는 생각이 번뜩 들었습니다. 순간 1,2초 정적이 흘렀고.. 이런 저런 생각이 머리속에 순식간에 스쳐 지나간 저는 '죄송하다'는 말 밖에 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죄송합니다."
"......(가방을 가리키시며) 이 만큼 붙여야 하루에 주문이 다섯개 정도 들어올까 말까인데..후~"

하소연이라도 하실 기색이었지만 이내 어두운 표정을 감추셨습니다.

(이렇게 붙여 놓으면 보기도 좋고 한번이라도 웃음을 주지 않을까? ↗)


큰 한숨과 함께, 제가 아까 쓰레기통에 버린 전단지 뭉치를 들고 멀뚱히 바라보시는 아저씨의 모습을 보니 우리나라 경제의 불황을 온몸으로 체감하시는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잠시후 그 분은 아무 말씀도 안하시고 반대쪽 길로 유유히 걸어가셨습니다. 다음 건물을 모색하시는 듯 두리번두리번 거리시는 뒷모습, 하루에도 수십개의 건물을 오르내리는 일이 보통이 아닐텐데.. 왠지 안쓰러워 보이기까지 하네요. 하나라도 더 팔아 보겠다며 추운 겨울에 전단지 돌리는 일을 마다하지 않으시는 아저씨의 굳은 의지에 제가 찬물을 끼얹은게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전단지는 생활쓰레기뿐이라는 고정관념을 하고 있는 저에게 작은 충격이었습니다. 매일 집으로 배달되는 전단지가 쓰레기인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전단지는 그분들이 지금의 경제불황을 견디고자 하는 굳센 의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해보니, 앞으로는 전단지도 대 놓고 못 떼어 버릴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