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사람들 2008. 10. 30. 14:07 일상 이야기
저희 아버지께서는 노인복지관에서 일을 하고계십니다. 일주일에 2~3일 정도 나가셔서 공원에도 가시고 복지건물에도 가셔서 청소도 하시는 일입니다.

환갑이 훌쩍 넘으신 아버지께서 집에만 계시는게 못마땅한 어머니께서 제안한 일인데.. 가족모두 만족해 하고 있습니다.

동년배 친구분들도 사귀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수 있는 모임이 만들어지기도 하셔서 요즘 아버지께서는 부쩍 얼굴이 환해지셨습니다.20만원이 조금 넘는 돈이지만.. 용돈벌이 하신다고 가끔 짜장면을 쏘시는 뿌듯함을 느끼기도 하십니다.

그런데 오늘 그동안 하시던 복지관일이 끝났나봅니다. 새벽에 시작한 일은 느즈막한 오전 10시가 넘어서 끝나고 쫑파티를 하기위해 일하시는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하셨다고 합니다.

저는 오늘 쫑파티를 하시는줄도 모르고 생각보다 많이 늦으시네~ 하면서 방청소를 하고 있었습니다.
12시가 넘자 전화한통이 울립니다. 같이 일하시는 아주머니께서 전화를 주셧네요.

"아버지께서 약주를 많이 하셨어요~ 택시를 태워보냈으니 집앞에 나가보세요~"

아주머니께 이런 저런 상황을 듣자 빨리 나가봐야 겠다는 생각에 점심도 거르고 혹시 택시비가 없으실까봐 만원을 꺼내서 집앞에 나가봤습니다.
10분이 지나고 20분이 지나도 아버지를 태운 택시는 보이지를 않네요. 너무 걱정이 되는 겁니다.
어머니께 전화를 드려도 전화는 음성메모로 넘어가더라구요.

순간 오만가지 상상이 다 들었습니다. 솔직히 겁이 났습니다. 무슨 사고라도 당하면...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더 커져만 가더라구요. 최악의 상황까지 생각하고 있었으니까요..
우선 집에 다시 들어와서 그 아주머니께 전화를 해서 상황을 자세히 듣고 경찰서에 가서 실종신고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술취하셔서 인사불성이신 아버지를 택시를 태워 보내셨나요? 택시번호도 왜 안적어 두셨나요? 택시회사는 기억하시나요?"

라고 마구 따지고 싶은 마음이 속에서 들끓었지만.. 그것은 나중에 따질 일이고 우선 급한것은 아버지의 행방이었습니다.부랴부랴 지갑을 챙기고 집에서 택시정류장쪽으로 나가는데 저쪽에서 뒤뚱뒤뚱 걸어 오시는 폼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바로 아버지였습니다.!  아버지를 알아본 그 짧은 순간 다리가 후들거리면서 풀리더라구요.

술을 얼마나 드셨던지.. 안잡아 드리면 바로 넘어지질것 같았습니다.
냉큼 달려가 어버지 팔짱을 끼고 겨우겨우 부축해서 엘리베이트를 잡아 탔습니다.
아버지의 눈을 보니 글썽글썽 거리시더라구요. 제 이름을 자꾸 되불으시면서 "미안하다... 미안하다..." 연거퍼 말씀하셨습니다. 갑자기 저도 울컥하는 마음이 들더라구요.

안방에 자리를 펴드리고 놀랬던 마음을 다시 가다듬는 중입니다.

"아버지는 왜 눈물을 흘리셨을까... 왜 나는 그 눈물의 의미를 모르는거지?"

아버지와 쌓고 지낸 벽이 너무 높에서 감조차 잡을수가 없었습니다. 부자간의 쌓아둔 벽이 이렇게 높은줄은 몰랐습니다.

저희 아버지께서 항상 쓰고다니시는 모자입니다. 유난히 창부분에 때가 많이 탔네요. 이걸 보니 더 맘이 안쓰럽습니다.

이 모자 사진을 계속 보고 있자니...일하시다가 이마에 땀이 맺혀서 더러워진 손으로 모자를 들썩이셔서 그랬겠죠? 이 모자 하나로 일하시는 장면이 머리속에 그려지니... 더 잘해드려야 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노년기에 재미삼아 하시는 일이라 생각했는데.. 위 사진을 보니 일이 고된건 아니신지.. 같이 일하시는 분들이랑은 잘 어울리시는지.. 이런 저런 생각에 마음이 편하지 않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