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이곳에 이사온지도 5개월이 다 되어 갑니다. 옥탑방이라는 공간과, 자취라는 두 단어는 이곳에 이사오기 한달 전부터 충분히 저를 흥분시켜 주는 요소였지요. 나만의 공간이 생기고, 나만의 자유가 생기는 이 곳. '방은 작지만 돈좀 들여서 멋지게 꾸며봐야지. 쌔끈한 자취생이 되어야지~, 나태해 지지 말아야지~' 라며 마음속으로 수없이 다짐을 했었습니다.

이 곳에 이사오고 나서 처음엔 좋았습니다. 누구하나 눈치볼 사람도 없고, 밤늦게 들어와도 뭐라할 사람이 없으니, 뒤늦게 자유라는 단어를 새삼스레 느끼게 되었지요. 게다가 옥탑방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기에 흠잡을 데라고는 눈꼽 만큼도 없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한달이 되고, 석달이 되고, 다섯달째 되니.. 슬슬 눈에 밟히는 점들이 있네요. 역시 사람은 몸으로 부딛쳐야 하나 봅니다. 예상치 못한 점들이 하나둘씩 보이다보니 난감한 게; 제목대로 자취에 대한 환상이 깨지는 순간들이죠.


   저녁에 집에 들어올때 방문 열기가 겁난다.


대학생때도 2년 정도 자취를 했었는데 그때는 B군과 같이 살았기 때문이 이런점은 잘 못느꼈습니다. 방문 열면 이불 속에서 꿈쩍도 않는 그 녀석의 인사를 받아주곤 했습니다. 그럴때면 '혼자 살고 싶다~ㅋ.ㅋ' 라는 생각도 가끔 들더군요.

지금 생각은 달라졌습니다. 방문을 열고 들어가면 어두컴컴한 방안이 왠지 으슥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꼭 누군가가 숨어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문앞에서 헛기침을 하기도 하고요. 이럴때는 B군이라도 있어 줬으면 하는 생각이 들죠. 사람의 마음이란 참 간사하지요? 있을땐 귀찮아 버리고 싶다가도 없으면 허전해서 다시 찾으니 말이죠. 만약 지금 B군과 같이 살고 있다면 저는 또다시 혼자살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ㅎㅎ

다행히도(?) TV에 예약기능이 있어서 그걸로 아쉬움을 달래고 있습니다.


   텅빈 냉장고, 전기세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


이거슨? 수박!

제 방에는 제 허리만큼 오는 작은 냉장고가 있습니다. 중고센터에서 하나 구입해온건데.. 혼자서 이정도면 충분하다 싶어서 고른 놈이죠.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이것도 큰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저녁을 밖에서 사먹거나 방에서 시켜 먹는데, 정작 밥해먹을 일이 없네요.

이사 온 첫날, 하얀 쌀밥을 지었습니다. 미리 챙겨온 반찬들고 함께 맛있게 먹었지요. 그런데 그것도 이틀뿐이었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밥을 해 먹은 적이 없네요. 아~ 저번에 삼겹살 구워먹을때 한번 했었군요. 이러다 보니, 냉장고 속 김치는 점점 쉬어가고, 다른 반찬은 다 먹지도 못하고 버렸습니다.

집에서 부모님이 가끔 반찬을 해주시지만, 고스란히 냉장고 속에 들어가 있다가 음식물 쓰레기 통으로 들어가는 꼴이 된 셈이지요. (작은 통에 담긴것이 김치인데, 뚜껑을 열면 아마도 집안에 있는 온갖 벌레들은 즉사할 지도 모릅니다. --;)


   혼자 짜장면 먹고 싶을 때, 세트메뉴도 시켜 봤다.


자취생의 주식은 배달음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옥탑방까지 올라오다 보면 1~3층 복도에는 먹고 남은 배달음식 그릇들은 항상 있더라구요. 이 건물에 사는 사람들만 잘 시켜먹는건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저도 집에서 밥해먹기 귀찮아서 대부분 시켜 먹게 됩니다.


싸지만 그나마 한상차린듯한 조합은 찌게+밥+밑반찬 시리즈입니다. 짜장면이 외식메뉴가 되었을 정도로 백반메뉴를 기본으로 시켜 먹습니다. 그러다가도 짜장면이 죽도록 먹고 싶을때가 있어요. 단골집이 달랑 하나는 배달 안해주는 동네라.. 꼭 2인분 이상을 시켜야 하는데요. 혼자서는 버거운 양이지요.

그래서 선택한게 세트메뉴, 탕수육+짜장+짬뽕+군만두~ 이틀에 걸쳐 먹어보자~ 라고 시켰는데..배달온 음식을 놓고 보니 .. 왜 이랬지? 라는 후회가 밀려오더군요. 그냥 짜장라면(?)하나 끓여 먹을껄ㅜㅜ. 짬뽕과 짜장은 다 먹고, 탕수육과 군만두는 다음날 한끼로 ~ㅎㅎ 짬뽕국물이 얼큰하니 끝내주길래 다음날 밥말아 먹으려다 괜한 청승떠는것 같아서 말았습니다.; (자취생의 기본이 부족한건가요?ㅎㅎ)


   낯선 각종 공과금. 여름에도 가스비가 나오네;


전기세는 일정하게 나가지만, 가스비.. 정말 만만치 않더군요. 겨울에 10만원 돈이 나오는건 그려려니 하고 넘겼는데, 저번달 가스비가 만원넘게 나오더군요. 보일러 틀지도 않았는데 말이죠.

하루에 한번 샤워할때 미지근한 물을 쓰는데 들어가는 가스비가 저만큼이나 나오리라 생각도 못했습니다. 아예 보일러 전원을 꺼둘까봐요~;

부모님이랑 살때는 공과금 같은거 신경도 안썼는데.. 쩝; 여름에도 꼬박꼬박 몇만원씩 나와는 가스비가 아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에어컨 사려고 생각했었는데.. 내년으로 미루어야 겠군요.

음.. 이렇게 써보니 길거리에 내 몰린 선우환의 마음이 이해가 가네요~ㅋ.ㅋ (자뻑~ㅋ) 부모님과 살때는 독립이 꿈이었습니다. 하지만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하니 점점 힘들어 지는군요. 너무 만만하게 생각한 것 같기도 하고요. 자취의 고수분들께 요령을 더 배워야 겠습니다.~

"어이, 자네. 할머니 품에서 벗어나.. 자취 한 번 해볼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