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결혼식에 다녀왔습니다. 요즘은 주구장창 결혼식이군요.T^T.. 예식이 끝난후, 친구들과 가볍게 당구한판 치고나니 저녁 5시즘 되더군요. 마음에 맞는 친구들끼리 저녁이나 먹고 헤어지려고 근처 고기집에 들어가서 옹기종기 둘러앉았습니다.

이런날 술이 빠진다면 섭섭하죠. 게다가 안주는 고기 ^^ !(고기는 자취생의 피와 살이 되어주는 고마운 음식.ㅎㅎ). 일명 주당(?)으로 알려진 우리 친구들이 이런 기회를 절대 놓칠리가 없습니다. 없는 건수도 만들어 내서 술마시는 친구들인데, 결혼식이란 대어를 낚았으니, 미리미리 컨디션 챙겨먹고 시작했습니다.

이슬이 세병 시키고~ 인원에 맞게 소주잔을 돌리는데, 한 친구가 "아줌마, 여기 글라스하나 주세요" 라며 주문을 하는 겁니다. '우리가 먹는것은 맥주가 아니라 소주인데.. 이 녀석이 왜저러지? 혹시.. 무슨 고민있나?'라고 속으로 내심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워낙 술을 좋아하는 친구라 '이넘이 이제 소주잔이 작아서 글라스에 소주를 퍼 먹는구나!' 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야~야~ 내일 월요일이야, 적당히 마시자~"라며 글라스에 소주를 붓는 친구를 말렸습니다.

하지만 제 걱정은 기우였습니다. 이 친구는 우리들 사이에서도 최고의 주당으로 알려진 친구인데요. 5000원짜리 닭똥집 하나 시켜놓고 소주 두병도 거뜬히 까?는 그런 친구입니다. 알콜중독이라고 친구들이 걱정해도 술 만큼은 누구에게도 지기 싫어 하는 타입이죠. 그랬던 이 친구가...


   "나는 글라스로 딱! 한잔만 마실테니, 더이상 술을 권하지 말아줘~"


그러더니 자기가 소주를 뚜껑을 깐다음에 벌컥벌컥 맥주잔에 소수를 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것만 마시고 안마실테니, 더이상 술을 권하지 말아달라는 부탁까지 했습니다. 처음엔 어이가 없었습니다. 남들 다 뻗어도 술자리를 끝까지 지키던 녀석이 이제는 술을 마다하다니..

"너 간이 많이 안좋아졌냐? 그리길래 작작마시지" 라고 걱정섞인 핀잔을 주며 소주잔과 맥주잔을 들고 건배를 했습니다. 우리끼리는 빈잔을 서로 따라주며 돈독한(?) 분위기가 싹텄는데.. 앞에 앉아서 맥주잔에 담긴 소주를 한모금 찔끔 먹고 내려놓는 모습은 조금 안쓰러워 보이네요.


나중에 알고보니 이 친구가 술먹고 실수를 했다고 합니다. 여기 적었다가는 100% 욕먹을게 뻔하니.. 자세한 내용은 패스하도록 하구요.; 그 이후 이 친구가 술을 멀리해야겠다고 생각했고, 두달 정도 술을 끊었다고 합니다. 보통 친구들끼리는 저녁에 술자리에서 만나는데.. 이 친구는 그런자리를 아예 아나갔으니, 인간관계도 조금 얇아 지는것 같아서 자기 나름대로 정한 규칙이 바로 이 것입니다.


   "술자리는 참석하되, 무조건 글라스로 딱 한잔, 그 이상은 안됨"


우리 나이때면 술을 엄청 먹을 시기입니다. 사회생활을 시작한지 얼마 안된 친구들이 많아서, 직장 회식에, 각종 모임이 많을 시기이거든요. 게다가 오늘처럼 친구 결혼식 뒤풀이라도 있는 날이면 허리띠를 풀고 고기를 먹는게 아니라 허리띠를 풀고 술을 먹어야 할 판이기 때문입니다. 한잔 두잔 따라주고 술잔을 돌리다 보면 어느새 술병은 쌓여가고, 1인당 한병은 우습게 먹게 됩니다. 이러다보니 자기가 얼마나 먹었는지 정확히는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 친구는 딱 이 한잔만 먹는다고 미리 선전포고(?)를 하고는 건배 할때마다 한모금씩 천천히 먹는 규칙을 세운것입니다. 맥주잔으로 소주를 가득따라보니 한잔 반이 조금 넘더군요. 결국 이 친구는 술자리 끝날때까지 소주 한병도 안 마신 셈입니다. 하지만 나머지 친구들은 엄청 취했죠. 월요일 출근임에도 불구하고, (그래서 술자리를 초저녁부터 마련했지만..) 1차에서 반은 나가 떨어질 정도로 마셨으니까요.

이넘이 예전같았으면 머리끝까지 술기운이 차오르도록 마셨을텐데, 오늘 말짱한 모습을 보니 신기하기하고 대견합니다. 그리고 이 친구의 부탁대로 더이상 술을 권하지 않은 우리 친구들도 대견하구요. 벌써 한달째 이 방법을 고수하고 있다고 하는데. 반은 성공적이라 합니다. 어떤 모임가면 자꾸 술을 권해서 중간에 빠져나오기도 했고, 술자리가 길어질것 같아서 1차 끝내고 먼저 가겠다고 나온적도 있다고 합니다. 그럴때면 괜히 눈치를 볼 수 밖에 없겠죠.

반면 예상외로 친구의 이런 의지를 도와주시는 분들도 많다고 합니다. 술잔이 돌다가 친구 앞에 오면 미리미리 끊어 주시거나, 술자리가 길어질것 같으면 미리 언질을 주신다고 하네요. 사실 이런 방법은 주위사람들의 도움 없이는 쉽게 성공할 수 없는 방법입니다. "에이 그러지 말고 한잔해~" 라고 자꾸 꼬드기면 술좋아하던 사람이 혹 하고 넘어가는건 시간문제일 테니까요. 자기의 의지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는 주위사람들이 확실히 도와주어야 성공하는 방법인것 같습니다. 다행히 이 친구의 회사동료들은 잘 도와주는 분들 같구요.

아무튼 소주를 글라스에 따라 마시는 친구를 보니, 저도 한번 시도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저야말로 술 한번 들어가기 시작하면 끝장을 보는 스타일이라서.. 가끔 험한꼴을 보이기도 하거든요. 한국의 술문화는 인맥을 연결해주는 통로같은 역할을 하는데.. 그런 자리를 뿌리칠 수는 없는 노릇이고, 자리는 참석하되 스스로 음주량을 조절할 수 있는 틀을 만들어 놓는건 어떨까요? 나이가 나이니 만큼(;) 이제는 스스로 관리할 때도 된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