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1990년도 어느 여름날, 더위에 찌들어 선풍기 바람을 맞으며 학교가기 싫었던 철없는 중학생이었다. 내 기억엔 그당시에 유명한 공인이 죽는 바람에 한간에 이슈가 되던 시절..

 

국어시간에.. 선생님께서 한시간 내내.. 돌아가신 그분 이야기를 해주시며.. 상가집에 갈때 상황극을 자세히 설명해 주시고는 하셨다.

 

"너네들이 나중에 결혼할쯤 되면, 상가집에 자주 가게 될꺼야~ 지인들의 상가집에 갈때는 몇가지 주의할 점이 있는데..~ 어쩌구~"

 

검은색 계통의 옷을 입고 가야하고, 여자들은 화장을 진하게 하면 안되고, 향수도 금해야 하고 등등  상가집에 갈때 기본적인 예의를 하나씩 설명해 주셨는데.. 그 중 어려웠던 부분이 바로, 상가집에 갔을때 인사를 어떻게 해야 하냐는 것이었다.

 

"친구네 아버님이 돌아가셨다고 치자~ 그러면 친구네 상가집 가서, 친구를 처음 만났어~ 그때 뭐라고 해야할까? '숙제는 했니? 요즘 새로나온 게임 해봤니~?' 이렇게 말해야 할까?"

 

"아니지~ 아무말도 안하거나, 그냥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라고 하면 돼,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정 위로해줄 말이 생각이 안나거든, 이 말만 기억해둬~ 알았지?"

 

라며 칠판에 큰 글씨로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라는 문구를 적어주셨다.

 

그런데.. 흘러가며 말씀해 준건줄 알았던 이게 기말고사 주관식 시험에 나올줄은 꿈에도 몰랐었다. 20문항중 2문제가 주관식이 었는데.. 주관식은 배점도 높거니와 오답률이 높은 문제라 우리들은 매번 꺼리게 되게 바로 주관식 문제였다. 그런데 주관식 문제에 바로 "상가집 예절" 문제가 나온것이다.

 

속으론 거저 먹는 문제라며 쾌재를 부르며, 거침없이 답을 적어냈다.

 

며칠후.. 기말고시기간이 모두 끝나고, 국어시간이 다시 돌아왔다. 선생님께서는 아이들 시험지 채점한것을 하나씩 나눠주겠노라며, 한명씩 나오라고 하셨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것은 "상가집 예절"에 대한 주관식 오답들이었다.

 

  • "상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이게 뭐니! 마이너스 1점!"
  • "삶과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이건 또 뭐니! 마이너스 2점!"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이게 답이지~ 정답!"
  •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 이것도 정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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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잠시 후... 선생님께서 갑자기 얼굴이 뻘개지시면서.. 웃음을 참이시는건지, 화가 머리끝까지 난건지 모를 표정으로 답안지를 뚫어져라 쳐다보셨다. 시험지를 손에 든채..

 

"28번 OOO 나와 봐~ -_-;"

 

아이들은 덩달이 긴장하고 있었다. 국어선생님은 손바닥을 매섭게 때리기로 유명한 분인지라;; 28번 김모시기 손에 열불좀 나겠구나~ 라고 숨을 죽이며 시선을 전방을 향해 고정하며 마른침만 꿀꺽 삼켰다.

 

"너 뭐라고 썼어~?!"

 

"...."

 

"뭐라고 썼어~!"

 

".... 마....마른..ㅎ.."

 

"더 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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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마른..하늘에.. 날벼락이 .. 웨..웬일....입니까!"

 

그녀석도 혼날줄 알고는 지레 겁먹었는지 말을 더듬으며 자기가 썼던 답을 말했고, 그 말을 듣는 순간 아이들 여기저기서 아이들의 피식~피식~ 웃음보 터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선생님도 아이들이 웅성웅성 거리며 웃음을 참는 소리가 들리자, 갑자기 빵하고 웃음을 터뜨리시면서 화를 내기는 커녕 28번 김모시기에게 꿀밤한대를 쥐어박으셨다. 모르긴 몰라도 그녀석을 혼내려고 불러냈는데, 상황이 갑자기 급반전 된것 같았다.;

 

"넌 상가집가서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웬일이냐고 할래? ㅋ 에그~ 들어가 요녀석아~"

 

거저먹는 주관식 문제였지만, 나름 일상생활에 도움도 되고, 상식을 채워주는 문제였는지라.. 머리크고 나니 , 상가집을 가끔 들르게 될때면.. 자꾸 이 주관식 문제가 불현듯 생각이 나고는 한다. '배운게 다 맞지는 않더라.~' 요 말을 현실속에서 실감하고 있지만, 적어도 28번 김모시기 덕에.. "마른하늘에 날벼락" 따위의 인사를 하는 실수는 하지 않게 되었으니, 참.. 뜻깊은 오답이 아닐 수 없다.

 

28번 김모시기도 위 '마른하늘에 날벼락 사건' 이후에 위 같은 실수는 하지 않고 있겠지? 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