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주 감기에 호되게 걸리는 바람에 일주일 내내 고생했었다. 월요일 아침, 도저히 출근할 여력이 없어서 결근을 하기로 하고, 직장동료 H군에게 미리 전화를 걸고 나서 대충 아침을 챙겨먹고 집근처 대학병원을 다녀왔다. 혹시나 신종플루가 아닐까 걱정을 했었지만, 병원에서는 체온이 일단 정상범위내에 있으니 아니다라는 진단을 받고 하루 푹 쉬니 좀 나아지는 듯 싶었다.

혼자사는 남정네가 자취방안에서 끙끙 앓고 있는게 안되 보였는지, 이튿날 저녁 여자친구가 올라와주었다. 오면 더 귀찮을것 같아서 오지말라고~ 말라고~ 했는데도 기여코 올라온 것이다. 감기기운은 다 떨어진 듯 했지만, 오랜만에 나 아닌 다른사람이 청소를 하고, 빨래를 하는게 왜이리도 행복했는지.ㅋ 솔직히 말하자면, 다 나았지만, 하루는 아픈척 하고 누워있었다. ㅋ

그 이튿날 저녁, 집 근처에 살고 있는 친구를 불러 셋이 함께 치킨을 한마리 시켜놓고, 맥주하나를 까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케이블에서 방송중인 남녀탐구생활이 화제로 나왔다.

"(여친:) 남녀탐구생활 넘 잼찌않니~ㅋ 어쩜 그리 잘 맞을까~ ㅋㅋ~"
"(나:) 넌 뭐 느끼는거 없어? 저번에 응~ 그 백화점 얘기, 딱 니 얘기 더구만~ㅋㅋ"
"(여친:) 내가 뭐~ 난 100바퀴[각주:1] 안돈다.~ 난 좀 양호한 편이야."

이렇게 시작된 대화는 점점 남자와 여자라는 범주를 양갈래로 나누며 심도깊은(?)대화를 하게 되었다. 그 중 블로그에 올릴만한 얘기를 하나 건졌는데, 어제 다음메인에 [남자 싫어하는 여자친구 행동] 이란 글이 안떴다면 잊어버리고 지나갈뻔했다.  너무 개인적인 상황은 자체심의로 걸렀고, 말랑말랑한 이야기 중 하나씩을 꼽아봤다.


남자 입장에서 본 여자친구가 짜증날때



우리 여친은 술을 먹을때면, 대부분 전화를 한다. 그 이야기를 빨리 들어줘야 전화를 끊기 때문에 응~ 그래~ 등등의 간단한 대답을 해줘야 주무신다.; 이건 나름 터득한 비법이라고 할까; 그런데 이 전화가 술자리가 파한후 오면 다행인데, 가끔 술먹다가 오는 전화를 해서 난감한 상황을 연출하고는 한다.

"어~ 남친, 나 애들이랑 술먹었는데.. 술값이 없네?. 딸꾹~"
"응?;; 술 . 값 . 이 . 없 . 어? ...... 딴 애들도 돈 없대?"
"응... 딸꾹~"
"카 . 드 . 도?"
"응... 딸꾹~"
".....(돈도 없으면서 술을 ch-먹어? -_- 란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꾹꾹 눌러담음).."
"빨리 좀 와줘~♡. 우리 여기 술집 앞에 앉아 있어~ 딸꾹~"

'사람이 4명인데 돈이 하나도 없다는게 말이 돼;? 카드도? 이거 뻥아냐?' , '진짜 없어서 가게 주인한테 머리 조아리고 있는거 아닌가' 등등.. 순간 내 머리속은 몇가지 생각이 든다. 부랴부랴 지갑을 챙기고 집을 나선 후 택시를 잡아 탔다. 도착해보니.. 여친 말대로 가게 앞에 4명이 쭈구리고 앉아 있었고 왠 남자 한명이 그 앞에 서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나를 본 여친은.. 

"왜 이제와~ 딸꾹~"
"택시타고 빨리 온거야~ -_-;"
"(핸폰 시계를 보더니..) 정확히.... 15분 22초 걸렸네~ 딸꾹~"
"뭔 소리야?... 술값 얼마 나왔어~?"
"헤헤헤...~"

상황을 정리해보니, 자기들끼리 술먹다가 각자 전화를 걸어 제일 빨리 오는 사람이 이기는 친구야 반갑다 게임을 한것이다. 옆에 서있는 남정네는 나보다 먼저 도착한 승리자(?)였다. 이거... TV예능프로그램에서 볼땐 웃으면서 재밌게 봤는데.. 예고도 없이 무방비 상태에서 당해보니 마음이 살짝 상한다.

우리 관계에 고작 몇분 몇초 라는 숫자로 의미를 부여하는게 부질없지 않나? 라는 생각이 1초간 들었다. 1초다.

"2초간 생각하진 않았다. 왜냐. 난 쿨하니까~ㅋ 걍 그때 그런 생각이 들었다구~"
"진짜? 음..~ 알써 이젠 그런 장난 안할께~ (쪼잔하긴.. 글자가 여친얼굴에 언뜻 비친 듯. -_-;)"
"그럼 넌.. 언제 내가 젤 짜증났어?"


여자 입장에서 본 남자친구가 짜증날때



연예 초창기때 우리는 PC방을 많이 다녔다. 서로 데이트 비용이 바닥을 달리는 상황이었는지라, 딱이 둘만이 있을 곳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여친도 어느정도 게임은 하기 때문에 간단한 카트라이더나, 고스톱, 그리고 스케이트 하는거... 이름은 잘 모르겠는데.. 그런걸 즐겼다.

그런데 PC방에 내가 먼저 일어난 적은 없다고 한다. (진짜;;? 10중 8~9는 되지 않았을까;;ㄷㄷ) 아무튼.. PC방에서 "그만 가자" 라는 말을 꺼낸 사람은 대부분 여친이었다. 그럴때마다 나는 "다 끝났어~ 조금만.. " 이란 핑계로 마지막 한판을 여유롭게(?) 즐기곤 했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더이상 못참은 여친은 가방다 챙기고, 옷다 입고 나갈준비를 하고 내 의자 뒤에서 내가 하는 게임을 물끄러미(-_ㅡ+ 요렇게) 쳐다보며 기다려 주었다.

"이럴때가 좀 짜증났어~ 이렇게 기다리는건 싫더라는거지.."
"음..."
"우리 이걸로 옛날에 한번 싸웠잖아. 나 그때 15분이나 기다렸었다."
"ㅋ.ㅋ... 맞다 그랬지~ㅋ"

얘기하다 보니 참~ 시시콜콜한 다툼도 많았고, 심하게 다툰적도 많았었다. 고운정보다 미운정이 더 무섭다더니.. 정말 그 말이 맞나보다. 단비가 내리면 땅이 굳어지듯이 애인사이의 다툼은 관계를 좀더 돈독히 해주는 역할을 함엔 틀림이 없는것 같다. (왠 .. 노인네 같은 말투..)

-끝-
  1. "백화점"은 백바퀴를 돌아 구경한다고 "100"화점이라나;; [본문으로]